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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알기 위해 믿는 것일까, 믿기 위해 아는 것일까,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4-06-07

- 오랜 기간 작업해오던 영화를 마침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 매일 생각이 달라진다. (웃음) <원더랜드>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2016년 정도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2~3년, 작품 준비하는 데 2~3년이 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맞물려 촬영 및 후반작업이 엄청 길어졌다. 한달 동안 새롭게 편집해도 다시 보면 예전 버전이 나은 것 같고, 발전이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다 다시 뒤로 가고, 일부분은 포기하기도 하는 과정이 동반됐다. 개봉 전주까지 계속 음악을 바꾸고 사운드를 믹싱했기 때문에 영화가 공개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쁘다. 한편으로 나는 이 이야기가 재밌는데, 과연 다른 사람도 재밌어할까라는 걱정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크게 들었다.

-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걱정이 되나.

= 나로서도 질문이 많은 영화였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뭘까, 그리워하는 상대를 만나는 게 정말 좋을까, 어떤 점이 좋은 걸까 하는 관념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도 죽음 등의 이유로 헤어진 사람을 보고 싶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상을 인공지능으로 재현해 일상을 함께한다는 설정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 이 영화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쌓아가는 서사가 아니라 상황과 감정이 파편적으로 나열돼 있고, 이들의 합에서 무드가 드러나는 방식이어서 이걸 관객들이 잘 받아들여줄까 싶었다.

- 듣다보니 영화가 현재의 내용과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이 궁금해진다. 영상통화하는 상대가 진짜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고, 그것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들었다. 이 질문이 영화작업으로 이어지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면.

=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영상통화를 자주 했다. 음성통화는 내가 있는 장소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데 영상통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배경을 살짝만 보여줘도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부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대화 내용도 달라졌다. 상대방과도 더 잘 연결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정서 교환을 한 뒤에 전화를 끊으면, 나는 여전히 원래 있던 공간에 있을 뿐이다. 마치 VR 기계를 썼다가 벗은 것처럼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으로 상대와 소통할 일이 많아지면서 실제로 만나는 것,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지에 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한번은 가족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일하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전화는 계속 할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펑펑 울더라. 그 이후로 언젠가는 나처럼 연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나올 테니, 그 기술을 기반으로 서로 계속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에게 인공지능 관련 자문을 구했다고.

= 교수님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강조했던 건 원더랜드 서비스가 너무 먼 미래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극 중 배경은 현재와 같지만 이 서비스만 보편화되어 있는 설정이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미 챗지피티 같은 기술이 나온 지금이야 전혀 낯설지 않지만 2016~17년에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면 다들 대화형 인공지능이 구현되려면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사람 목소리의 떨림이 여러 뉘앙스들을 담고 있어서 실상 실현 불가능할 거란 의견도 들었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예상보다 무척 빠르게 온 거다.

- 원더랜드의 기술적인 면을 설명하기보다는 사용자들의 관계맺음이나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 처음엔 인공지능 기술에 관해 많이 공부했고, 그걸 시나리오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기술을 이해하려는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서비스보다는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여기게 됐다. 누군가가 게임을 할 때 물론 모니터 화면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모니터보다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로 시선을 가져가고 싶었다.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인정할 수 없었던 부분을 어떻게 갑자기, 왜 받아들이게 됐으며 또 어째서 그 반대의 경우가 벌어지기도 하는지 그 과정을 탐구해 담고 싶었다.

- 원더랜드 기술을 설명하는 부분은 후반에 편집된 건가.

= 그렇다. 초반엔 기술에 관해 설명하는 신이 많았다. 제작 당시에만 해도 이 기술이 신선하고 재밌고, 기술에 관해 설명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사용자들의 관계와 마음에 집중하다 보니 기술 관련 내용들을 많이 덜어내게 됐다.

- 할머니와 손자, 엄마와 딸 등 원더랜드를 사용하는 대상들의 관계가 가지각색이다. 초반엔 더 다양한 사례를 떠올렸을 것 같은데 그중 현재의 캐릭터들로 확정하게 된 이유는.

= 말한 대로 여러 사례를 써봤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총합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실제로 다룰 인물들을 선별하게 됐다. 처음 고른 건 진구(탕준상)네 할머니다. 죽은 손자를 볼 수 있는 서비스에 중독돼 자기 삶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마는 캐릭터다. 피폐하긴 하지만 가장 익숙하고 다루기 편한 감정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생각을 거듭하면서 서비스 중독을 극복해내는 캐릭터, 또 내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면 가상 세계 속 영생의 존재가 되길 거부하지 않는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정인(수지)과 바이리(탕웨이)의 엄마가 이에 해당한다. 한쪽은 가상 세계의 인물을 인정하고 한쪽은 인공지능으로 재현된 딸을 믿지 못한다. 딸의 사진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 믿음과 의심이 충돌하며 생기는 시너지효과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 가족이 본인에게 중요한 화두인가. <가족의 탄생>도 그렇고 여러 유형의 가족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길 선호한다는 인상이다.

=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어디까지 가족이고 가족이 아닌지 그 경계에 대한 의문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계속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마음,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진 않지만 어쨌든 세상을 떠난 가족구성원까지 붙잡고 있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 있어온 것 같다.

- AI를 연기한 배우들마다 연기 톤이 조금씩 다르다. 가령 해리(정유미)의 부모님은 아주 자연스러운데 AI 태주(박보검)는 의도적으로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가미한 느낌이 들었다. 디렉션에 어떤 차이를 뒀나.

= 연기 톤에 관해선 계속 논의를 거쳤다. 당시에는 정말 기계적으로 끊어 말하듯 연기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몰라도 결국 사람과 똑같아지는 시대가 올 것이니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가자고 의견이 정리됐다. 그때 로봇처럼 연기했으면 지금의 관객들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바이리는 죽은 뒤 원더랜드로 완전히 넘어간 사람이고 태주는 실제 태주와 AI 태주 둘 다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좀더 주려고 했다.

- 바이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했다.

= 바이리가 정말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탕웨이 배우도 시나리오를 보더니 정말 연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기술적으로도 항상 상대가 어떻게 리액션을 하고 자신의 연기를 이해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상상하거나 혹은 미리 찍어둔 상대 배우의 영상에 맞춰야 했다. 그래서 성준과 찍는 신이 정말 즐거웠다고 하더라. 단지 진짜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웃음) 스토리적으론 스포라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바이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배우가 가진 본연의 힘으로 보다 설득력 있게 상황을 보여준 것 같다.

- 후반작업이 오래 걸린 데에는 방대한 CG 작업의 영향도 있었을 테다.

= <원더랜드>는 CG 장면이 정말 많은 작품이다. 화려한 CG는 없어도 디테일한 작업이 많이 들어갔는데 가령 영상통화하는 신에서도 핸드폰에 화면을 전부 넣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데이터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았다. 근미래이니 너무 낯설지 않으면서도 <매트릭스>를 비롯한 기존 영화들에서 구현한 데이터의 세계와는 차이를 두고 싶었다. 그렇게 과학자, CG 디자이너들과 논의해 작품 속으로 가져온 게 입자다. 하나의 작은 점들이지만 모이면 여러 형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존재에 대한 믿음에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영화다. 인간을 기술적으로 완벽히 구현하는 것과 별개로 상대가 존재한다고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원더랜드의 사용자들이 보여준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 생각이 정리된 부분이 있나. 처음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은지.

= 예전에 친구에게서 한 스웨덴 신학자가 남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알기 위해 믿는 것인가, 믿기 위해 아는 것인가. 세상이 너무 궁금해서 믿기 시작했고 그랬더니 보이더라라는 맥락의 말이었다. 영화 찍을 때도 이 말을 자주 생각했다. 사실 답을 얻은 것 같진 않다. 다만 이 주제로 영화를 좀더 찍어보고 싶다. 이번엔 너무 어렵게 접근해서 다음에 좀 편하게 찍어보고 싶다. (웃음)

- 그 이야기는 <원더랜드>의 속편이 될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될까.

= 잘 모르겠지만 <원더랜드> 인물들의 스핀오프처럼 찍어봐도 재밌겠다 싶다. AI인 성준(공유), 바이리의 멜로는 어떨까. AI는 인간을 모방하면서 발전하는데 인간계에서의 호감이 예고 없이 생겨나는 것처럼, 이들도 인간을 모방하다 이런 갑작스러운 애정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태주와 정인 커플의 본격 멜로도 괜찮겠고 욕심내자면 현수(최우식)와 해리의 동료이자 연인으로서의 로맨틱코미디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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