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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향의 공식과 틀을 벗어나, 최태영 음향감독에게 듣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정재현 2024-06-13

최태영 음향감독은 <더 문>을 통해 소리가 존재할 수 없는 우주의 음향을 만들어냈다. 그는 <옥자> <기생충>에서 돌비애트모스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실험했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모가디슈> 등에서 음향효과가 화룡점정인 총격전도 수차례 구현해왔다. 그런 최태영 음향감독에게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내가 알던 음향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작품이다. 알려졌다시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수상작이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즉 아카데미 시상식 유권자인 최태영 음향감독에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향이 보이는 탁월함에 관해 물었다.

Q.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음향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인가.

A. 그렇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사운드는 영화 음향의 공식과 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영화엔 아우슈비츠수용소 내부의 풍경이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오직 소리로 지옥도를 묘사해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향은 호러영화와 궤를 같이한다. 호러영화는 공포의 실체가 등장하기 전 사운드가 먼저 존재감을 비추며 긴장감을 만든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미 나치의 만행을 사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채 영화를 감상한다. 그래서 음향만으로 수용소의 모습을 절로 영사할 수 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택 밖 수용소의 소리를 듣는 존재가 헤트비히(잔드라 휠러)의 어머니인 리나(이모겐 코게)다. 수용소 외부에서 온 리나와 달리 수용소 내부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이들은 그곳의 비명을 일상의 소음처럼 취급하는 점이 섬뜩하다.

Q.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향은 왜 파격적인가.

A. 물리적 거리를 무시한 영화의 음향이 불편함을 배가한다. 영화의 음향은 관객이 상상하는 거리감을 만들어줘야 한다. 영화 중반부까지 계속 앰비언스로 깔리는 수용소의 용광로 소리가 그 예시다. 사택과 수용소간의 거리가 꽤 있는데도 그 소리를 크게 믹싱함으로써 거리를 왜곡해낸다. 서울 2호선 건대입구역 근처에 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외부로 개방된 지하철 선로 근처에 살면 아무래도 소음에 무감각해진 채 살 것이다. 그런데 컨디션이 불안정한 날이면 전철 소리가 증폭돼 들릴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은 수용소의 용광로 소리가 크게 들려도 무시하며 사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관객에겐 그 소리가 불편하게 들린다. 심리적 음향인 셈이다.

Q.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캐릭터간 대사에 사택의 생활 소음과 사택 밖 수용소의 사운드가 겹쳐 들린다. 대사와 비슷한 비중으로 믹싱된 음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A. 처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감상했을 땐 작품의 음향이 굉장히 거북했다. 시각에 잡히지 않는데 알 수 없는 코끼리 방귀 소리 같은 저음이 계속 등장해 앰비언스를 잘못 믹싱했나 싶었다. 온갖 음향이 뒤섞인 사운드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시각을 차단한 채 영화의 사운드만 듣는다면 정말 이상할 것이다. 뇌가 인지하는 음향에는 일정한 비율이 있다. 뇌의 신경 내에 소리의 레퍼런스가 저장돼 있다고 보면 된다. 그 비율을 벗어나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 또각대는 구두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구두 소리가 가득한 군중 속에 있더라도, 옆에서 친구가 언어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대사도 마찬가지다. 대사는 관객 귀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 믹싱되는 것이 영화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정석이다. 이 영화는 그 모든 비율을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음향을 담당한 탄 윌러스와 조니 번이 얼마나 감독과 끝없는 재가를 통해 영화의 음향을 만들어갔을지 눈에 선하다.

Q.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다층적 음향을 경험하기 위해선 극장 관람이 최선인가.

A. 물론이다. 이어폰으로 감상하면 작품의 입체적 음향이 단선화되고 다운믹싱될 것이다. 작품이 의도한 사운드의 오롯한 ‘체험’이 전부 다운그레이드될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음향을 위해 시네마의 다른 요소가 통제됐다는 인상을 받는다. 통상 음향은 컷이 바뀌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생기면 화면에 지배당하기 마련이다. 가령 카메라가 오버숄더숏을 담기 위해 패닝하면 좌우 서라운드 사운드가 바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비주얼의 운동성이 최소화돼 있다. 그래서 음향이 카메라가 움직일 공간을 채운다. 고정된 카메라로 인해 음향이 제 위치를 점유한 채 영화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Q. 음향적으로 주목해야 할 장면은 무엇인가.

A. 압도적인 두 장면이 있다. 기차의 증기로 인해 화면이 화이트아웃된 장면 위로 유대인 포로를 폭압적으로 다루는 독일군의 왈라 사운드가 점점 증폭된다. 내화면이 외화면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이 지었을 법한 악마적인 표정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루돌프(크리스티안 프리델)가 계단을 내려가며 구역질하는 장면의 음향에도 주목하길 권한다. 음향만으로 공간감을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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