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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실을 캐서 치열하게 쓴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강명을 만나다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4-06-27

1.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2. 당대 현장을 다룬다. 3.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 4. 이 동인의 멤버임을 알린다. 이러한 규칙대로 글을 쓰는 작가 모임이 있다. 2022년 결성된 소설가 동인 ‘월급사실주의’다. 1950~60년대 영국 노동계급의 모습을 다룬 사회적 사실주의 사조 ‘싱크대 사실주의’를 의식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 2024년 5월 월급사실주의의 두 번째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 출간됐다. 이번 작품에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 작가가 참여했다. 비정규직, 돌봄노동, 학벌주의 등 소재도 다양하고 점주, 간호조무사, 물류알바생, 프리랜서 등 주인공의 직업도 다양하다(첫 소설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2023년 9월에 나왔으며 김의경, 서유미, 염기원, 이서수, 임성순,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지영, 최영, 황여정 작가의 글이 실렸다).

월급사실주의라는 조어를 만들고 동인을 꾸려 소설집을 기획한 이는 소설가 장강명이다. 2011년 <표백>으로 데뷔한 그는 원작 소설로도 잘 알려진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신문기자 출신답게 르포집 <당선, 합격, 계급>, 1, 2권 합쳐 800쪽이 넘는 장편소설 <재수사>, 관심사인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까지 다양하게 써왔다. 그러나 장르가 무엇이든 원류는 동시대 한국 사회였다. 그는 “내가 보는 대로 쓴다”고 말하는 소설가다. 그렇기에 장강명의 문장은 에두르지 않으며 간결하고 표현과 단어 쓰임이 정확하다. 그래서 장강명 소설은 빠르다. 환부를 찔러 아프지만 곪은 부위를 터뜨려 후련한 느낌을 준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을 기해 장강명을 만났다. 인터뷰 당일인 지난 6월18일에도 그는 여전히 한국을 징글징글해하면서도 끈질기게 걱정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치열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 월급사실주의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나.

= 먹고사는 현장을 취재해서 쓴 소설 <산 자들>(2019)을 냈을 때 평소와 달리 반박하고 싶은 평이 두개 있었다. 하나는 사실대로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평이었다. 동의할 수 없었다. 리얼리즘, 그러니까 현장에 가보거나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난한 사람과 여성의 삶,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대로 쓰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설득력이 생긴다. 또 하나는 왜 노동자 편을 안 드냐는 평이었다. 무조건 노동자는 옳고 경영진은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주장이었고 이는 2020년대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글로 배워 선입견에 빠진 사람이 할 법한 소리였다. 오래전부터 나는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한국 문학계에 발품 팔아 당대를 말하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이러한 작품들이 이제는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름을 붙였다. 작가들을 모으기 위해서도 이름은 필요했다.

소설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책을 펴내는 일은 그렇지 않다. - ‘협업의 도구’

- 월급사실주의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의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 2022년 6월, 처음부터 멤버로 점찍어두었던 김의경, 정진영 작가에게 먼저 합류를 부탁드렸다. 그러고 나서 동인의 성격과 잘 맞을 것 같고 글 잘 쓰는 작가 20여명에게 긴 취지의 내용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출판 기획안도 직접 써서 보냈고 문학동네가 그걸 받아주어 1년3개월 뒤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멤버 대부분이 내가 그렇게 섭외한 분들이고 출판사에서 어울릴 거라 추천한 분들도 있다. 결성 이래 의도적으로 한번도 모이지 않았다. 아이템이 겹치는 걸 방지하고자 뭘 쓸지에 관한 의견만 처음에 받았다. 앞으로도 모이지 않을 계획이다. 만나서 술 마시고 서로 추켜세우는 동호회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책으로만 말하고 지금 한국문학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10~20년 뒤의 독자에게 “2020년대 소설가들은 비정규직이, 플랫폼노동이 그렇게 많아진 시대를 살았으면서 왜 그걸 안 썼어”라는 쓴소리를 듣지 않도록 당대의 문제를 쓸 것이다.

그것은 독서 공동체다. (중략) 호시 신이치와 프레드릭 브라운과 역대 수림문학상 수상자들의 이름과 작품이 언급되는 공간. 예비 독자에게 정보를 주고,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 <당선, 합격, 계급>

- 2022년 9월,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아내 김새섬 대표를 도와 열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장강명 작가가 드디어 <당선, 합격, 계급>에서 밝힌 소망을 이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곧 개설 2주년인데 어디까지 성장했나.

= 지금 회원이 약 1만1천명이고 매일 올라오는 글이 300개쯤 되니까 커뮤니티치고는 꽤 잘되는 편이다. 준비 단계에서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운영자가 아닌 회원 주도가 되어야 몸 갈아넣고 끝나버리는 일이 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모임을 만드는 게 아닌 모임이 알아서 열리도록, 회원의 자발성을 우선에 두고 운영하고 있다. 그랬더니 다양한 모임이 정말 많이 생겼다. 어머니들이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푸는 독서 모임이 있다. ‘오늘도 다 틀렸네요’라는 글을 달면서 재밌어하신다. 얼마 전엔 열린 필사 모임엔 벌써 글이 1300개쯤 올라왔다. 그믐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서점, 출판사, 작가들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홍보의 장으로 쓰여도 좋으니 그믐에서 책 얘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애초에 독서 생태계를 조성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큰 목표였고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지속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 본다.

- 무료 플랫폼인 만큼 앞으로의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고민도 클 것 같은데.

= 아내가 스케일이 크다. (웃음) 지금 단계에서는 당장의 수익성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진정으로 사랑받는 사이트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감사하게도 벌써 그믐에는 그런 사랑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그믐 때문에 살 것 같다’는 블로그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렇게 “인생 참 계획대로 안되네”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미세 좌절’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 ‘미세 좌절의 시대’

- 2020년대의 현실을 ‘미세 좌절의 시대, 혼미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개인적으로 미세 실패가 아닌 미세 좌절인 것이 특히 흥미롭다.

= 미세 실패와 붙이니 미세 좌절이 더 선명해진다. 미세 실패가 뭔가라도 해볼 수 있는 거라면 미세 좌절은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강덕구 평론가의 책에서 그가 2010년대를 ‘시간이 흐르지 않는 시대’라고 쓴 구절을 읽은 적 있는데 공감한다. 정치에서도 사회에서도 비전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그렇다. 나아갈 길을 모르니 매일매일 느리게 퇴행하고 꺾이고 있음에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이렇다 할 시도 한번 없이 그저 멍하니, 혼미한 상태에 머무는 거다.

- 2024년으로 특정했을 때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전체 조망은 어렵다. 다만 ‘적을 알아야 내가 누군지도 알 수 있다’고 했던 새뮤얼 헌팅턴처럼 개인적인 적은 알았다. 긴 글을 믿고 수호하고 싶은 나의 적은 SNS고 숏폼 콘텐츠이고 짧은 글이고 스마트폰이다. 요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책 100권을 한 페이지씩 찢고 그걸 또 한 문장으로 찢어서 한방에 뿌린 상태와 같다. 그 쪼가리들을 다 읽는다고 해서 책 내용이 이해될까. 아마 머리에 들어오기는커녕 뭘 읽었는지 더 모르는 상태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건 정보이지 지식이 아니다. 그렇기에 현대인이 하루 동안 여기저기서 읽는 글자가 책 한권 분량이기 때문에 책 안 읽어도 된다는 소리는 말이 안된다.

- 그렇다면 SNS를 전혀 하지 않나.

= 최대한 멀리하려 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계정은 있고 인스타그램과 틱톡 계정은 없다. OTT 구독자도 아니다. (본인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스마트폰 자체를 멀리하려고 화면도 이렇게 심심하게 흑백으로 만들고 인터넷이랑 유튜브 앱도 숨겼다. 그런데 나 역시도 중독자라… 유튜브에 들어가서 새벽 1시까지 개 동영상 보다가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자제하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않으면 이걸 얼마나 붙들고 있을까 싶다.

영화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자주 떠올리고 외워서 종종 읊기도 하는 문장들은 소설의 명문장이 아니라 영화의 명대사다. - ‘힘들 때 떠올리는 영화 대사 리스트5’

- <레이더스> <재키 브라운> <대부> 등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이 모두 옛것이다. 최근작이 업데이트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 그대로다. 사실 영화를 잘 안 본다…. <범죄도시3>, 재밌게 본 <파묘>빼면 천만 영화 중에도 본 것이 거의 없고, 올해는 극장에 두번 정도 간 것 같다. 진지한 한국영화는 <산 자들> 읽는 독자들 마음이 이렇게 무겁겠구나 싶어 보기 힘들다. 다 때려부수고 뇌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오락영화를 상대적으로 좋아한다. 마블 시리즈는 페이즈3까지 따라갔고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또 나왔네 하면서 다 봤다.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러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면서 인생을 보낼 것 같았고요.” - <재수사2>

- 영상과 소설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는데 그럼에도 소설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판권 파는 거야 전혀 거절 안 하지만 같이 작업하자는 제안은 고사하고 있다. 출판쪽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사이즈였던 터라 초창기에 거절할 땐 마음이 엄청 쓰렸다. 아내가 해보라는 작품도 있었고, 끝까지 오래 고민한 작품도 여럿 있다. 그렇지만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진 않을 거라는 거다.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내겐 변함없이 소설 쓰는 일이다.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인생 구조조정’이라 불러야 할 작업에 착수해야 할 때인가 보다. -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 스톱워치로 자신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던 삶에서 벗어나는 중이라고. 요즘 작업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나.

= 소설 쓰는 시간의 덩어리를 가장 우선으로 두고 나머지는 다 덜어내고 있다. 칼럼 연재는 지난해에 다 그만두었고 강연과 방송을 줄였다. 신기한 건 스톱워치를 쓰던 시절과 별 차이 없이 일상이 굴러간다는 거다. 오버해서 쓰는 날이 간혹 있는데 그렇다고 7~8시간씩 쓰지는 않는다. 많이들 그렇겠지만 나도 메일 답장하다 보면 하루 절반이 간다.

내게도 꿈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걸작을 쓰는 것이다. - ‘꿈이라는 친구’

- 여전히 걸작을 쓰는 게 꿈인가.

= 걸작을 남길 능력은 없어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올해로 데뷔한 지 13년이 됐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설의 종류는 무엇인지 찾아가는 시기를 거쳐 리얼리즘 소설에 당도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취재해서 쓰면 직접 방문을 통해 해상도 높아진 현장, 혼란스러운 모습, 날것의 상태를 담을 수 있다. 그런 소설은 2020년대 작가가 쓴 1960년대 이야기와는 분명 다른 힘을 지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은 <산 자들> 2편을 낼 예정이고 관심사인 SNS와 AI에 관련한 논픽션은 지금 쓰고 있다. 월급사실주의 소설도 2025, 2026년 버전으로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70~80대까지 <산 자들> 같은 단편을 70~80편 쓰면 그 작품들이 나보다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장강명이 요즘 즐겁게 읽은 책

“존 메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필로소픽, 2023). 시인, 컴퓨터 공학자, 저자인 철학자 존 메설리에게까지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을 논리적으로 총망라한 책이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주장을 발견했을 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도 반대를 만났을 땐 의문을 품으면서 재밌게 읽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부여해야 한다, 의미고 뭐고 알 수 없는 채로 그냥 살아가야 한다는 양쪽 의견이 모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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