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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류학자의 마음으로, <팬시댄스> 배우 릴리 글래드스턴
남지우 2024-06-27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 촬영을 끝낸 릴리 글래드스턴을 1년 만에 오클라호마로 다시 불러들인 건 영화 <팬시댄스>였다. 지난 한해 여우주연상 후보로 시상식 레이스를 마치고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호명된 글래드스턴은 6월28일 Apple TV+를 통해 공개되는 차기작에서 언니가 실종된 후 조카 로키(이사벨 드로이 올슨)를 보호하게 된 원주민 여성 잭스를 연기했다. 존재 자체로 강인한 생명력과 공동체를 포용하는 지혜를 지녔던 <플라워 킬링 문>의 주인공 몰리와 달리 잭스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준거틀에서 반뼘 비켜나 있는 안티히어로이자 반성장 서사의 주축이다. 제대로 된 직업 없이 마약 소지 관련 전과가 있고 스트립 클럽을 드나들며 섹스산업의 구매자가 되기도 하는 그(녀)는 시스템과 적극적으로 불화하며 조카에 대한 임시적인 양육권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두 원주민 여성의 처지가 이렇게나 달라진 데엔 “세대를 거듭하며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가 배태되어 있다”고 글래드스턴은 말한다. “아메리카 땅에서 원주민을 제거하기 위해 역사가 가해온 것들이 있지 않나.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첫 세대인 몰리가 겪은 원주민 살해는 안타깝게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같은 종류의 슬픔이 계속되고 있다.” <플라워 킬링 문>에서의 가족은 절대적인 사랑과 보호를 기반으로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방어력을 지닌 관계였던 반면 <팬시댄스>의 가족은 현대화를 거치며 일종의 양가감정에 시달리는 연약한 관계가 됐다. “몰리와 잭스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가장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족을 위해 더 정직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공유한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모장 중심의 정서와 여성 중심의 언어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원주민 바깥의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팬시댄스>에서 릴리 글래드스턴이 구사하는 세네카-카유가(Seneca-Cayuga) 말은 전미를 통틀어 21명의 구사자만이 남은 사멸 위기의 토착어다. “원주민 언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이자 내가 만든 장면이 언어 몰입 수업 등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대의로 똘똘 뭉친 글래드스턴은 “원주민 배우들은 배역에 따라 새로운 언어를 빠르게 습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적인 인식에 배우로서 저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며 작업의 의의를 설명했다. “잭스가 조카 로키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 중 하나는 부족의 언어를 전승하는 것”인 만큼 원주민 토착어는 <팬시댄스>의 스토리 자체를 견인한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민족의 언어가 여성들에 의해 이어져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글래드스턴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충만한 아메리카 원주민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의 마음으로 원주민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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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