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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법에 대한 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지 뭐라도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 책이니까 그 정도는 봐주고 넘어가자. 책의 제2장 “단순한 세계의 유령들”은 디지털 디톡스 휴가에서 시작해, 사회를 떠나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세운 사람들의 역사를 되짚는다.
제일 먼저 나오는 건 에피쿠로스학파다. 쾌락주의라는 말 때문에 오해받곤 하는 에피쿠로스학파는 사실 쾌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절제와 평온을 중시하는 철학이다. 그들은 아테네 변두리에 세운 정원 학교에서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살았다.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닌데 새삼 다시 호기심이 갔다. 특히 그들이 공동체를 정원이라고 불렀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어디 한번 검색해볼까… 에피쿠로스 정원으로 검색하니 수많은 결과가 떴다. 오랜만에 이름을 듣는 아나톨 프랑스의 산
[정지돈의 구름과 멀티태스킹하기] 검색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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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는 진리를 깨우치려는 세 사람을 다룬 옴니버스영화다. 먼저 인간이 오직 우열한 유전자를 계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유튜브를 보고 혼란에 빠진 고등학생(박서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음으로 걸인(심규호)의 입을 통해 그가 일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엿듣는다. 마지막으로 진실만을 말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오동민)의 수난이 등장한다. 멀티버스 코미디라는 슬로건에 이끌렸다면, 이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비켜갈 것이다. 여기서 인용된 다중우주론은 불완전한 개인의 소우주를 존중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세 에피소드의 종착지는 평범한 삶에 대한 찬미다. 진화론부터 부조리극까지 우화적 상상력이 소환되지만, 어딘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풍자를 겨냥한 펀치 라인들의 타율도 저조하다. 납작한 우화의 교훈이 부유하지만, 오동민의 능숙한 연기만큼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리뷰]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 얇은 상상력과 얕은 농담으로 읊조린 가장 보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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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탈을 쓰고 불법 격투장의 링에 오르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키드(데브 파텔). 그에게는 어린 시절 부패한 경찰청장 라나 싱(시칸다르 케르)에게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다. 라나를 암살하기 위해 최상류층의 클럽에 잠입하지만 첫 시도는 아쉽게 실패하고 만다. 그는 수도승 집단 히즈라의 도움을 받아 종교와 정치가 결탁한 지배세력을 향한 두 번째 복수를 준비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린 나이트>의 주연배우 데브 파텔의 감독 데뷔작이다. 총검의 궤적을 끈질기게 쫓는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로 끈적하고 불온한 맛을 살린 액션 신이 인상적이다. 인도계 영국인 감독의 문화적 유산이 녹아든 풍경 속에서 계급제와 종교, 소수자 인권 등을 자연스레 조명하는 성실함 또한 미덥다. 그러나 치밀하지 못하고 다소 산만한 전개가 아쉽다. 키드의 전사는 지나치게 파편화되고, 유혈이 낭자한 결투의 강박적 반복은 액션의 효과를 저해한다.
[리뷰] ‘몽키맨’, 단죄의 증거로 피를 갈구하는 반복수행의 파괴력 또는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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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기만 해도 존재가 흔들리는 시절. 학교 건물에 갇힌 6명의 중학생들은 태풍 전후로 자신의 구성 성분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성인이 되고 싶은 동시에 선생님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미카미, 사회의 윤리에 질문하는 미치코, 규범을 벗어나고 싶은 야스코, 자기 안의 폭력성을 마주하는 켄과 학교를 벗어나기로 한 리에 등 <태풍클럽>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립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행한다. <태풍클럽>은 방향성을 상실한 어른들과 불온함에 잠식당한 미성년의 세계를 수수께끼처럼 던진다. 혈기와 불안, 성적 욕망으로 들끓는 아이들의 열기를 한정된 시공간에 응축해낸 소마이 신지의 대표작으로, 1980년대 일본영화 뉴웨이브의 흐름 속에서도 돌출적인 작품이다. 아마추어 배우들의 즉물적인 연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연출과 여름의 공기를 파고드는 거침없는 롱테이크 촬영이 소마이 신지 영화의 입문자들에게도 매혹적인 손길이 되어준다.
[리뷰] ‘태풍클럽’, 여름의 공기를 파고드는 소마이 신지의 뉴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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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아르바이트생 보윤(최보윤)에게 입사 지원 동기와 성격의 장단점을 채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80% 이상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취업 자기소개서 대필가가 남들에겐 밝힐 수 없는 그의 진짜 직업이기 때문이다. 월세가 없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대학생 강민(류이재), 학생회장 선거에 열올리고 있는 인플루언서 세민(기세민), 착하지만 운 없는 남자 태호(안도연)까지 의뢰인들의 삶을 포장할수록 보윤은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정직한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칠 줄 아는 주인공을 내세워 한국 청년의 다양한 현실을 보여주는 효과적 설정이 돋보인다. 주거 불안과 취업난, 고립과 경쟁사회 속에서 허덕이는 의뢰인들의 에피소드를 이야기꾼의 세계에서 풍부하게 펼쳐낸다. 끝에 이르러선 상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인물의 비상을 희망차게 묘사한다. 보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후반부가 익숙하지만 확실한 용기를 준다.
[리뷰] ‘정직한 사람들’, 이야기꾼 주인공과 함께 상상의 나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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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가 주목하는 수학도 마거리트(엘라 룸프)는 희대의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에 매진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세미나 발표에서 지도교수의 또 다른 제자인 루카(줄리앙 프리종)가 오류를 지적하는 바람에 그녀의 증명은 물거품이 된다. 실의에 빠진 마거리트는 교수와 언쟁 끝에 학업 포기서를 제출한다. 인생의 전부였던 수학을 포기한 그녀는 그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안나 노비옹 감독의 <마거리트의 정리>가 논증하려는 것은 정수론이 아니라 존재론이다. 수학 없는 삶은 생각도 않던 주인공이 타인의 세계라는 변수를 통해 성장한다. 수리적 난제와 실존이란 고뇌는 반증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로우>에서 피와 살을 탐내며 도발적인 에너지를 자랑하던 엘라 룸프의 연기 변신도 돋보인다. 외골수적 강박과 미워할 수 없는 서툶이 공존하는 마거리트를 통해 제49회 세자르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리뷰] ‘마거리트의 정리’, 정수론에서 존재론으로, 반증이 빚어낸 증명 혹은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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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화령(조현진)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자신이 찍은 영화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는다. 화령과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 후배 배우, 감독 등이 차례로 병문안을 와서 그가 참석하지 못한 시사회와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진술은 조금씩 다르다. 2부에 접어들면 앞서 등장했던, 화령과 관객이 알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증언이 더욱 충돌하며 실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흑백 화면에 고정된 카메라, 한정된 공간 활용이 주는 심플함에 비해 영화는 방대한 대사로 진행된다. 때문에 관객은 스스로 비선형적으로 던져진 단서들을 취합해 이면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일련의 과정 자체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과 내러티브의 주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유형준 감독은 1년여간의 공백기를 두고 1부와 2부를 촬영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과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리뷰] ‘우리와 상관없이’, 비선형 미로를 헤매며 나아가는 우리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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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겨울, 속초에서 김포로 향하던 비행기가 하늘에서 납치된다. 이른바 ‘하이재킹’이라 불리는 항공기 납치사건의 중심엔 부기장 태인(하정우)이 있다. 2년 전 공군의 전투기 파일럿이었던 태인은 납북 중인 민항기를 공격하지 않았고, 명령 불복종의 책임을 지며 전역했다. 이처럼 아픈 과거를 겪긴 했으나 태인의 가치관은 한결같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란 일념이 태인을 움직인다. 그는 베테랑 기장 규식(성동일), 승무원 옥순(채수빈), 항공 보안관 창배(문유관), 그리고 60여명의 승객과 함께 기지를 발휘해 납치범 용대(여진구)와 맞선다. 청년 용대는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형이 있단 이유만으로 남한사회에서 모진 핍박을 받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가족을 찾아 북으로 가려는 용대의 서글픈 감정은 영화의 또 다른 동력이 된다.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실화에서 가장 크게 각색된 부분은 납치범 용대의 사연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리뷰] ‘하이재킹’, 고증의 예의와 재미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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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상궂은 인상과 괴팍한 표정,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복장까지,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는 눈에 띄는 겉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자주 받는다. 도시를 떠난 둘은 전원생활을 꿈꾸며 숲속 오두막집으로 이사 오지만 부동산 웹사이트에 등록된 이미지와 정반대의 으스스한 집을 얻는다. 심지어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 오랫동안 봉인됐던 지하실 문을 열면서 그 안에 갇힌 악령이 깨어나고 만다. 한편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온 미나(공승연)는 설레는 연애 관계로부터 크게 배신당하고 강가로 뛰쳐나갔다가 물에 빠진다. 이 사고를 목격한 재필과 상구는 새집에 미나를 데려와 열성으로 간호하지만 남은 친구들은 이들이 미나를 납치했다고 오해한다. 마침내 미나를 구하기로 한 친구들이 힘을 합칠 즈음 집에서 이상한 우연이 거듭되더니 하나둘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핸섬가이즈>는 편견과 오해에서 출발한다. 흉포한 외모를 지닌 사람은 생각과 행동마저 위험할 거라는 오랜 편견이 영화의 기본 배경을
[리뷰] ‘핸섬가이즈’, 이럴 수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던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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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신의 전부를 잃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파산의 경험을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오만이 의심스럽긴 해도 나는 기꺼이 그 비극성의 속도에 관해 물어보고 싶다. 어림잡아 파멸의 사건이 한순간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알겠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가 행성 충돌의 순간을 위한 영화가 아니듯이, 언제나 사건 이전과 이후가 과연 어떤 속도로 흘러갈 것인지가 문제다. <멜랑콜리아>의 진짜 고통은 자매가 서서히 미쳐버릴 수 있는 시간을 라스 폰 트리에가 너무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주었다는 점일 수 있다. 종말의 여파 속에서 시동을 건 조지 밀러 감독은 어떨까. 지금껏 <매드맥스> 시리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폭주하는 속도로 관통해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잃은 인류의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 중 하나가 광기와 분노일 것이라 예언해왔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 격인 <퓨리오사: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비극의 속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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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오스카 시각효과상까지 거머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결국 국내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물론 이는 괴수물이 꾸준히 국내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몬스터버스의 다섯 번째 영화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는 북미에서의 성공과 달리 국내에선 51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앞선 세편의 몬스터버스 고질라 영화도 100만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2016년 개봉 당시 일본 흥행 2위를 기록한 <신 고질라>는 국내 관객 7592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봉준호의 <괴물>이나 심형래의 <디 워>, 혹은 피터 잭슨의 <킹콩>처럼 흥행에 성공한 괴수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흥행이 하나의 현상처럼 여겨졌음을, 나아가 <고질라> 시리즈와 같은 전통적인 ‘거대 괴수물’의 흥행이 없다시피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
[비평] ‘고지라’의 타임 패러독스, <고질라 마이너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