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으로 떠났던 재벌 3세 송도영(전도연)이 딸 강해나(이지혜)와 함께 귀국해 집으로 향한다. 도영의 집은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으로 16살 생일에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다. 가족과의 반가운 해후도 잠시, 대를 이어 세습된 송씨 가문의 기업은 무능한 오빠 송재영(손상규)의 경영 실책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다. 송씨 가문의 운전기사로 복무했던 아버지를 둔 사업가 황두식(박해수)은 도산을 막을 방법으로 벚꽃 동산의 재개발을 제안한다.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대극장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공연의 제목에 유명 연출가의 이름을 명기한 것은 괜한 공치사가 아니다.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은 작품의 연출이자 각색 작가인 사이먼 스톤의 필치가 고전을 통제해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 설정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편집자)로 재창조한 사례다. 19세기 말
[CULTURE 스테이지] 사이먼 스톤 연출 ‘벚꽃동산’
-
“부자 남편 만나 팔자 펴라. 어차피 네 힘으로 인생 성공 못한다”는 황당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유언뿐 아니라 계모와 언니들과 (계모 뱃속의) 동생, 그리고 빚도 함께 남겼다. 생존을 고민하던 신재림(표예진)은 유언대로 상류층 사교 클럽인 ‘청담헤븐’에 입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담헤븐 대표이자 “MZ세대 재벌 8세” 문차민(이준영)과 엮이게 된다. 티빙 드라마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의 주된 설정만 보면 이 무슨 구시대적 발상인가 싶다. 하지만 드라마는 고전 동화 <신데렐라>와 ‘K드라마’가 무수하게 반복한 클리셰를 ‘대놓고’ 비틀며 의외의 웃음을 유발한다. 발랄하고 전복적인 ‘B급’ 유머만 있는 게 아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아닌 “흙투성이 흙수저”로 ‘재림’한 주인공을 통해 요즘 청년의 현실과 가치관을 영리하게 반영한다.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가 소환한 요즘 청년은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 한복판에서 자조하
[오수경의 TVIEW]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
-
K팝 그룹이 시간관을 다루는 가장 급진적인 사례가 5월 끝에 등장했다. 걸 그룹 아르테미스의 <Virtual Angel> 뮤직비디오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반적인 시간관을 탈피해 시간관 그 자체의 붕괴를 의도한다. <Virtual Angel>은 뮤직비디오 공개 이틀 뒤쯤 <Human Eye Ver.>이라는 편집본을 내놓았는데 그 사정이 무척 흥미롭다. 기존 뮤직비디오의 몽타주가 초 단위가 아니라 프레임 단위로 무수히 잘게 쪼개진 컷들로 구성된 탓에 영상을 제대로 시청하거나 이해하기 힘들다는 팬들의 원성이 불거진 것이다.
그렇다면 ‘Human Eye’의 반대는 무엇일까. <Virtual Angel> 뮤직비디오엔 미디어 속 아이돌의 모습을 욕망하고 추앙하는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아이돌(아르테미스)의 모습이 겨우 3~4프레임마다 교차하며 시공간의 혼동을 일으키는 와중에 소녀들은 마법봉처럼 생긴 오브제를 들고 비상을 꿈꾼
[기획] 아르테미스, 시간을 쪼개는 마법 소녀
-
오로지 현재의 시간성에 집중한 사례도 있다. 트리플에스(tripleS)는 1명의 멤버부터 24명의 멤버가 모두 모이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을 유튜브 콘텐츠로 노출했다. 특히 데뷔 전 멤버들의 숙소에서의 일상을 그날 밤에 바로 데일리 영상으로 게재해 팬들과 공유하는 극한의 현재지향형 소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무장한 트리플에스의 현재지향적 태도는 역시 그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대거 표현됐다.트리플에스는 2022년 10월 공개한 첫 타이틀곡 <Generation> 뮤직비디오에서부터 틱톡, 인스타그램 유의 SNS 인터페이스를 화면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곤 그 화면에 셀프 좋아요를 누르면서 자신을 틱톡 시대의 표상으로 천명했다. 이후 <Rising> <Girls Capitalism> <Girls Never Die>의 뮤직비디오에선 요즈음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로 일컬어지는 속칭 지뢰계 이미지를 경유하여 가출 청소년, SNS 및 게임 중독
[기획] 트리플에스, 오로지 지금을
-
-
뉴진스의 반대편엔 미래지향형 에스파가 있다. “사건은 다가와 Ah Oh Ay”라며 도래할 미래를 한껏 포용하려는 <Supernova>의 가사를 살피면 방향성의 차이는 더 확실해진다. “우린 어디서 왔나 Oh Ay, 원초 그걸 찾아”라며 언뜻 과거에 시선을 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찰나 이어지는 가사는 “거세게 커져가, 질문은 계속돼”다. 과거의 사건을 짚더라도 그것을 매개로 계속 나아가려는 미래 지향적 벡터가 바로 에스파의 정수다. 애초 ‘광야’라는 세계관 속에서 멤버의 아바타인 ‘ae’(아이)들과 조력자 ‘naevis’ (나이비스) 등 SF 요소를 그룹의 전반적인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더하여 전세계 최초의 VR 콘서트인 <링팝: 더 퍼스트 브이알콘서트 에스파>를 극장 개봉하며 다분히 미래파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기존 세계관의 확장을 목표한다고 밝히며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Armageddon》에도 미래를 지시하는 듯한 요소는 한층 풍부
[기획] 에스파, 죽어도 나아가는 초신성
-
시간관이란 말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모두가 알 법한 예시를 들면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걸 그룹 뉴진스는 과거지향적이다. 뉴진스의 멤버들이 90년대의 어느 시간을 헤매는 시간 여행자라거나 하는 세계관이 있진 않다. 그럼에도 <Ditto>에 이어 최근 까지 뉴진스엔 시기 미상의 아련한 과거 혹은 90년대의 청춘, 뉴트로, Y2K 같은 수사가 함께했다. 저화질의 캠코더 영상에서 교복을 입고 춤추던 <Ditto> 뮤직비디오 속 소녀들의 모습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겠으나 뉴진스의 전략은 더 전방위적이고 섬세하다. 80~90년대 유행한 음악 장르의 소스를 기반으로 곡을 만든다거나, 단독으로 출시한 소통 애플리케이션 ‘포닝’에 피처폰 이미지를 활용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도 더 감각적인 톱니바퀴들이 뉴진스의 시간관을 만든다.
뮤직비디오의 도입부, 플레이어에 비디오테이프가 하나둘 꽂히고 나면 뉴진스 멤버들은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기획] 뉴진스, 과거를 바라보는 캠코더
-
“뮤직비디오는 작품인가? 상품인가?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가? 뮤직비디오를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음악을 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신우석 감독, <씨네21> 1392호) 뉴진스의 <Ditto> <OMG>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신우석 감독이 뮤직비디오의 의미에 관해 던진 질문이었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특정 예술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정답을 내리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일련의 4세대 K팝 걸 그룹의 뮤직비디오는 시청각적 아름다움과 각 그룹 고유의 세계관을 표현하던 결과를 넘어 그룹 특유의 ‘시간관’을 드러내며 뮤직비디오가 엄연한 작품임을 입증했다. 세계관은 음악, 앨범, 뮤직비디오, 글 매체 등 각종 시청각 콘텐츠에서 거시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룹 고유의 서사성을 뜻했다. 그러나 서브컬처의 일종이었던 K팝이 한국의 주류문화이자 세계 단위의 문화산업으로 거듭났고, 세계관으로의 진입장벽은 점차 높아졌다. 여기서
[기획] 세계관에서 시간관으로, 4세대 K팝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파헤치기
-
<씨네21>과 <CITYBOY_LOG>가 다시 뭉쳤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도쿄에서의 만남 이후 약 반년 만의 재회다. <CITYBOY_LOG>는 VOL.3에 돌입하며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알콩달콩 연애 중인 이재준과 이지한 커플의 이야기 위로 새로운 도시 소년들이 등장한 것이다. 재준의 연습생 동기 임정규는 모두에게 자상한 남자다. <CITYBOY_TRIP>을 촬영하러 온 FD 황윤제는 지한의 눈총 속에 첫눈에 꽂힌 재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지한처럼 모델 출신 배우인 이동섭은 지한에게 마음이 가지만 재준과 지한의 사이를 알고 속앓이를 한다. 얽히고설킨 다섯 남자는 VOL.3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함께 화보를 찍는다. 서로를 견제하며 상대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놓으려는 다섯 남자들은 이후 어떤 관계로 나아갈까. 이들의 엇갈린 사랑의 작대기 속으로 <씨네21>이 들어보았다.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촬영 중인 뉴
[씨네스코프] VOL.3 마지막 에피소드 촬영 현장기, 사랑은 이제부터
-
낚기 전까지는 모른다. 무엇이 낚일지. <밤낚시>가 관객에게 영화 안팎으로 제공하는 체험도 비슷하다. 한산한 도로를 통과해 인적 없는 전기차 충전소에 도착한 남자는 공중에서 무얼 잡아채려는 걸까? 1천원으로 10여분의 단편영화 티켓을 판매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6월14일 CGV에서 단독 개봉하는 <밤낚시>는 이 탁 트인 질문들에 따를 어떠한 대답도 들을 준비가 된 현대자동차와 손석구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했다. “아이오닉5에 탑재된 카메라의 시점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올 초 콘텐츠 제작사 스태넘을 설립한 후 프로듀서로서 첫 극장 출항을 앞둔 손석구는 말했다. “왓챠의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제작자로서 제게 단편 연출 기회를 줬던, 먼저 이 길에 도전한 ‘동생이지만 선배인’ 배우 이제훈의 감상이 무엇보다 궁금하다”고. 그렇게 <씨네21> 지면 위에서 성사된 두 친구의 대화는 그들이 줄곧
[masters’ talk] 우리가 극장 영화를 추앙하는 이유, <밤낚시> 제작·주연 손석구에게 이제훈이 묻다
-
아이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지루함에 몸을 비틀며 핸드폰을 슬쩍 보다가 아이 앞에서 핸드폰 좀 그만 보라며 혼이 난다. 그렇게 강제로 아이‘들’을 가만히 보다 보니 문득 신기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조차 아이들은 도통 지루할 틈이 없다. 권태를 허락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없는 곳에 데려다놓아도 기꺼이 놀이를 시작하고, 질리면 바로 다른 놀이를 찾아낸다. 놀거리가 다 떨어졌을 땐 기어이 상상 속 친구와 함께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내고야 만다. 아이들의 개념 속엔 ‘지루함’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 같다.
이제는 픽사의 수장이 된 피트 닥터 감독이 <인사이드 아웃>을 제작한 계기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린 딸에 대한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대체 저 작고 앙증맞은 머릿속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세상이 펼쳐지는 중일까. 어린 시절이 없었던 사람은 없지만 다 자라버린 어른들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눈치와 염치
-
최태영 음향감독은 <더 문>을 통해 소리가 존재할 수 없는 우주의 음향을 만들어냈다. 그는 <옥자> <기생충>에서 돌비애트모스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실험했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모가디슈> 등에서 음향효과가 화룡점정인 총격전도 수차례 구현해왔다. 그런 최태영 음향감독에게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내가 알던 음향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작품이다. 알려졌다시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수상작이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즉 아카데미 시상식 유권자인 최태영 음향감독에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향이 보이는 탁월함에 관해 물었다.
Q.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음향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인가.
A. 그렇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사운드는 영화 음향의 공식과 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영화엔 아우슈비츠수용소
영화 음향의 공식과 틀을 벗어나, 최태영 음향감독에게 듣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